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은 이 시대 부모의 보편적인 신념을 건드린다. 그 신념을 대표하는 이야기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다. 지금의 부모 세대 대부분은 이 이야기가 너무나 익숙하다. 당장은 고생하더라도 미래를 준비해야 추위에 떠는 겨울날의 베짱이 신세를 면할 것이라는 경고는 '유비무환'이라는 사자성어와 함께 우리 두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의 행복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유보해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이 이 시대에는 그저 상식이다. [개미와 베짱이]를 읽으며 모두들 예술을 사랑하고 현재를 즐기는 베짱이는 한심하게 여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개미처럼 겨울에 먹을 낟알을 열심히 모아야지, 뭐하는 짓이냐며 혀를 찬다.
들쥐 프레드릭은 베짱이와 판박이다. 다른 들쥐들이 겨울을 대비해 먹을 것을 모으려 밤낮없이 일할 때 프레드릭은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은다. 겨울에 부족한 것이 식량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따뜻한 햇살도 없다. 자연은 무채색의 모습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웅크리고 틀어박혀 있어야 하니 재미난 이야기도 금세 바닥이 나고 만다.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자 들쥐들은 돌담 속 틈새에 숨어 들어가 여름철 내내 모았던 옥수수와 짚을 먹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곡식은 떨어져 가고 들쥐들은 힘을 잃고 우울해한다. 역시 겨울에 부족한 것이 식량만은 아니다. 프레드릭은 다른 들쥐들에게 자신이 여름내 모았던 햇살과 색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저 이야기일 뿐이지만 모두들 살아 있다는 활기와 따뜻함을 느낀다. 프레드릭이 낭송하는 시를 들으며 들쥐들은 겨울의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 낸다.
우리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먹을 것만 주면 군말 없이 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겐 꿈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하고, 위안이 필요하다. 예술은 배부르니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픈 배를 견뎌 내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삶에 여유가 있어서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쓸쓸함을 견뎌 내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중에서...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 박사가 [프레드릭]이라는 그림책을 소개했던 글의 일부입니다. 우리 삶에서 경제활동이나 의식주 말고도 예술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존재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글인 것 같습니다. 위 내용 중에서 '예술은 배부르니까 하는 것이 아니고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필요하다. 예술은 삶에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쓸쓸함을 견디기 위해 필요하다.'는 부분이 무척 마음에 와닿습니다. 인간의 정신적 허기는 물질적인 수단으로는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 소설, 그림, 음악, 영화, 무용 등은 우리의 감정에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꿈을 꾸게 해주는,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을 좀더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자산임이 분명합니다.
마음의숲 심리상담센터
원장 박 준 영
תגובו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