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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감

 

 

상담을 진행하면서 두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은 "인간관계를 잘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입니다. '신뢰, 공감, 소통' 답은 간단한 것 같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들과 친해지고 싶은 욕구'가 '자기보호본능'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느 정도의 '상처'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오늘 상대를 보고 싶은데 상대는 시간이 안 될 수 있고, 상대가 나 하고만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다른 사람과 더 가깝게 지내고, 상대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는데 관심없는 것처럼 보이는 등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 일은 수없이 많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먹고 싶은 게 있어도 표현하지 않고 상대 입맛에 맞춰주고, 약속을 잡을 때도 상대의 편의를 생각해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상대가 하는 부탁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들어주려고 노력하는데도 내가 해준 만큼의 절반도 돌아오지 않을 때 느껴지는 배신감과 허탈감은 보상받을 길이 없습니다.

 

자기주장의 영역으로 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상대에게 서운한 것이 있어도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내가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하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깨질 것 같고 상대의 화를 돋울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합니다. 그렇게 쌓인 분노와 서러움이 폭발하기 직전 홀연히 연락을 끊고 잠적하기도 합니다. 혹은 화가 날 때마다 자제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좀더 행복해지기 위해 남들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인데 이처럼 상처 받아야 한다면, 관계를 포기하더라도 '자신을 지키고 싶은 것'이 인간 본능인 것 같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을 것이고, 선의를 베풀 만큼 가까운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매번 손해보면서 상대에게 맞출 필요가 없을 것이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말 안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면 더이상 상처받을 일은 없을테니까 말입니다.

 

물론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데는 댓가가 따르겠지만, 별다른 대안책이 없는 이상 뭘 더 할 수 있을까요?

 

'친밀한 관계'를 떠올리면 '편하고 가까운 사이라서 무엇이든 터놓을 수 있고, 손익 계산하지 않고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관계'가 생각납니다. 어린시절 죽마고우나 부모자식 관계처럼 말이죠. 그래서인지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순간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러한 기대가 깨질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역으로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이러한 기대를 깨트릴까봐 표현 한번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으면서도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한계설정'을 얼마나 잘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지 인지하고, 상대가 그 선을 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한계설정이라고 부릅니다. 용어 자체는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계설정을 잘 하게 되면 오히려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관계가 '안정적'이라고 느껴야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고, 두려움이나 죄책감 없이 상대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한계가 잘 설정되어 있으면 관계에서 크게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자유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 엄격하지도 너무 무분별하지도 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부모에게 안정감을 느끼고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갑갑한 것이 인간관계'라고들 합니다. 그만큼 정답이 없고 풀기 어려운 숙제라는 뜻이겠죠. 하지만 관계에서 자신을 잘 지킬 수만 있다면, 좀더 안정적이고 친밀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숲 심리상담센터

원장 박 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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