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우울한 기분’에, 강박증에 걸린 사람은 ‘강박적인 생각’에, 불안장애에 걸린 사람은 ‘걱정’에 사로잡혀서 일상생활을 잘 유지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많이 지켜봐왔습니다. 이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기분이 정상적일 땐 의욕도 있고 재미도 느껴지고 잠도 잘 오니까자신의 기분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기분이 우울해지기 시작하면서 의욕이 저하되고 뭘 해도 재미가 없고 불면증까지 나타나니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자신의 기분을 집중적으로 살피기 시작하는 것이죠. 강박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강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스불은 끄고 나왔나?’, ‘문은 제대로 잠그고 온 건가?’와 같이 불길한느낌이 들면 집을 나섰다가도 다시 돌아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불안해지는 걸 강박증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씩은 경험합니다. 하지만 강박증이 생기면 그 불안이 너무 심해져서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죠. 걱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이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음날 있을 시험걱정, 건강에 대한 걱정, 사고에 대한 걱정 등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발생할까봐 미리 불안해합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그런 걱정이 떠올라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별일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하지만, 불안장애가 걸리신 분들은 하고 있는 일이 손에 잡히질 않고 계속 그 ‘걱정’만 붙들고 있느라 ‘일상’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분의 하루 일상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A씨는 영어학원 강사로 평소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고, 개인적인 시간에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는등 액티브한 삶을 살던 분이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했던 사람과 파혼을 하게 된 후 우울증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평소와 다르게 학원을 자주 빠지고 취미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등 A씨답지 않은 모습들이 나타났습니다. 아이들과 상호작용하고 가르치는 일을 재밌어했는데 수업시간에 집중도 잘 안되고 재미도 안 느껴지니까 학원 가는게 싫어졌던 것입니다. 취미활동을 하러 가서도 평소 많던 웃음도 사라지고 말수도 줄어들다보니 ‘어디 아프냐’는 말을 자꾸 듣게 되고 불편하기만 해서 이것도 더이상 할수가 없었습니다. 퇴근후나 주말에는 침대에 누워만 있게 되었고, 씻거나 정리하는 것, 먹는 것도 귀찮아져서 침대에 누워만 지내게 되었습니다. 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늦게까지 잠을 안 자다가 새벽 늦은 시간에 겨우 잠이 들어서 다음날피곤한 상태로 출근을 했어야 했습니다.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빨리 기운 차려서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생활해보자’라고 마음 먹지만, 다음날도 어김없이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보니, 그 ‘우울한 기분’에 휘말려서 계획했던 것들을 해내지 못하는 걸 반복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분이 정상적일 땐 자신의 기분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삽니다. 기분을 느끼기는하지만 자신의 기분에 대해 깊게 집중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가령, 설겆이를 하고 있을 때 ‘설겆이를 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지 자신의 기분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상태가 되면 ‘설겆이를 하는행위’에는 집중이 잘 안 되고 자신의 ‘우울한 기분’에 집중하게 됩니다. 우울증을 경험해본 분들은 이 기분을‘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는 느낌, 암흑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 커다란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느낌’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불쾌한 느낌이 떠나지 않고 몸에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 드니까 일상에 집중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A씨도 이 느낌 때문에 평소 좋아하던 것들을 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분 좋게’ 하던것들인데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하려고 하니 할 맛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A씨의 ‘일상’이 텅 비어 있게 됐고, 시간은 많아진 반면 ‘하는 일’은 없으니까 ‘공허하고 의미없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다시 A씨를 우울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되어 우울증에서 점점 빠져나오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A씨가 우울감이라는 ‘증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요? ‘내가 지금 기분이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재미가 없다 하더라도, 이 기분 때문에 내 삶이 무너지게 하지는 말자’라고생각하고,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가능한 일’에 집중한다면 말입니다. 전처럼 방정리나 설겆이가 손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그것부터 조금은 해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던 취미생활을 다 유지할 수는 없더라도 그중 한가지, 예를 들어 산책을 다녀올 수도 있겠죠. 밤낮 바뀐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 12시 이후로는 스마트 기기를 치워놓고 지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강의하는게 전처럼 재밌지도 않고 집중해서 잘 안된다 하더라도 ‘수강생들과의 약속이니까 빠지지만 말아보자’라고 마음 먹고 그렇게 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라 믿고, 우울증 ’증상‘은 ’한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삶’을 살고 있다보면 어느새 지나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해본다면,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 우울증 때문에 저를 찾아오셨던 분들을 보면서, 이러한 사실에 대한 확신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시작해보지만, 몇주만 지나보면 ‘내가 왜 진작 이렇게 해보지 않았지?’라며 의아해하십니다.
우울증 ’증상‘ 때문에 힘든 건데 ‘증상’에 집중하지 말라고 하니 어느 누가 그 말을 처음부터 순순히 받아들일까요? 대부분 ‘증상이 제거되어야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증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임상현장에서 상담을 해보면, ‘생활을 제대로 해야 정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우울증의 경우 ‘수면패턴’만 제대로 돌려놔도 증상의 절반 이상이 나아지는 걸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강박증의 경우에도 ‘강박증상’ 보다 ‘일상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을 때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강박증상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지다가, ‘강박증상이 있어도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경험하게 되면서 강박증상의 무게가 줄어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생활만 바로 한다고 심리적인 문제가 자동으로 다 해결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초보자에게 수영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힘을 빼고 물에 뜨는 법‘부터 알려줘야 그 다음 동작들을 교육할 수 있는 것처럼, 심리적인 문제들도 자신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들로부터 한발 떨어질 줄 아는 법‘부터 가르쳐줘야 거기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치료의 첫단추라고 할 수 있는 ‘증상이 아닌 삶에 집중하기‘를 먼저 실천해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좋은 기분으로 잘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잘 하고 있는 것’이니까말이죠.
마음의숲 심리상담센터
원 장 박 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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