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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오르내림'이 아니라 '뿌리내림'이다
우리는 흔히 "자존감을 높이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이미 하나의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 오르내리는 무언가라는 전제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이렇게 경험합니다. 일이 잘 풀리는 날에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실패하거나 비교당하는 날에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마치 사다리를 오르내리듯, 성취와 인정을 얻을 때는 위로 올라가고, 실패와 거절을 마주할 때는 아래로 내려갑니다. 문제는 이 사다리 위에서는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다리의 특성상, 위로 올라간 자리는 언제든 다시 내려올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다리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도, 다음 실패나 비교 앞에서는 순식간에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사람이 정작 작은 비판 앞에서 크게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서 있


관계 맺기를 위한 자기 개방 —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이유
강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티 내지 않고, 지쳐 있어도 웃으며 버티고, 도움이 필요해도 혼자 해결하려 애씁니다. 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곧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의미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아도 참고, 힘들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라도 삼키고, "괜찮아?"라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응, 괜찮아"라고 답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를 강한 사람이라 여기지만, 사실 그 강함의 이면에는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였을 때 돌아온 반응이 안전하지 않았던 경험, 혹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던 환경에서 비롯된 생존 전략일 때가 많습니다. 힘들다고 말했을 때 무시당하거나, 울었을 때 오히려 혼났거나, 도움을 요청했을 때 돌아온 것이 실망이었던 경험은 아이에게 하나의 규칙을 새겨 넣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규칙입니다


수치심 심리 이해하기 — '수치심'이라는 마음의 감옥
죄책감과 수치심은 자주 함께 언급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감정입니다. 죄책감은 "내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느낌입니다. 반면 수치심은 "내가 잘못된 존재다"라는 느낌입니다. 죄책감은 행동을 향하지만, 수치심은 존재 자체를 향합니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죄책감을 느낀 사람은 사과하고, 바로잡고, 다시 시도할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치심을 느낀 사람은 숨고, 움츠러들고, 자신을 지워버리고 싶어집니다. 수치심은 사람을 유난히 조용하게 만드는 감정입니다. 화나 슬픔은 어떻게든 표현되지만, 수치심은 대개 침묵 속에 머뭅니다. 왜냐하면 수치심의 핵심 메시지가 "이런 나를 남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조차 감추려 합니다. 이것이 수치심을 다른 감정보다 다루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름 붙이기도 전에, 먼저 숨어


완벽주의에 대한 이해 —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 뒤에 숨어 있는 것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더 나은 결과를 원하고, 더 꼼꼼히 준비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마음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잘 해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족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움직입니다. 잘했을 때 느끼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안도이고, 조금이라도 부족했을 때 느끼는 것은 아쉬움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완벽주의는 흔히 성실함이나 높은 기준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완벽주의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해야 한다"는 목표라기보다, "부족한 나는 괜찮지 않다"는 믿음에 더 가깝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일의 결과는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시험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좋은


미움받을 용기, 그 반대편 — '미움받지 않을 권리'
몇년 전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저도 그 책을 읽었고,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던 기억이 납니다.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 남 눈치보느라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미움 받더라도 자기 소신껏 살라’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 생각해보니, 이 말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이 나를 미워하더라도 나만 개의치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겠냐는 말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 돌리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만사 본인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어떤 일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이번 컬럼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폭력’입니다. 왕따, 은따, 집단 괴롭힘, 빵셔틀, 온라인 폭력 등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폭력들을 보면,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의 특정한 점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미워하고 괴롭히


'착한아이 증후군' 원인과 극복
'착한 아이'와 '착한 아이 증후군'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초등학생 아이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1시간만 놀이터에서 놀기로 엄마와 약속하고 외출을 했습니다. 놀다보니 1시간이 금새 지나갔습니다. 친구들은 30분만 더 놀자고 했습니다. 이 아이도 더 놀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가 엄마가 자신에게 화낼 모습을 상상하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한테 안된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잘 놀다 왔니?'라고 묻자 '네 아주 재밌게 놀다 왔어요'라고만 대답하고 '더 놀고 싶었는데 못 그랬어요'라는 말은 입밖으로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이 아이는 엄마의 말을 거역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친구들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엄마와 1시간만 놀고 들어가기로 약속했고 본인도 그정도만 놀고 들어가서 다른 걸 하고 싶었습니다


자기 가치감 낮은 이유 — 나와 남에 대한 “가치평가”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인가?’, ‘존중받을만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를 늘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만약 여기에 대한 확고한 해답을 갖기만 한다면, 지금보다는 덜 스트레스 받으며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모를 때가 더 많은 듯 합니다. 어떤 순간에는 자신이 가치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별것 아닌 일에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경험을 자주 하니까 말이죠. 그리고 자신의 가치는 낮게 여겨지는 반면, 남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게 여겨져서 열등감에 빠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선, 우리의 ‘존재가치’는 무엇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평가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절대적인’ 방식과 ‘상대적인’ 방식 말이죠. 절대적인 평가방식은 이렇습니다.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동일한


'자존감' 높이는 방법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나요?" 입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되면 '삶을 좀더 도전적으로 살 수 있고, 인간관계도 더 원활해지고, 스스로에 대해 더 만족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비교했을 때, 높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삶의 만족도나 인간관계 만족도 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두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자존감'과 '친밀감'을 선택할 것입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고 남과 잘 지낼 줄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얼마든지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서적들을 보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문구가 단골손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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