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오르내림'이 아니라 '뿌리내림'이다
최종 수정일: 9월 13일

우리는 흔히 "자존감을 높이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이미 하나의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 오르내리는 무언가라는 전제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이렇게 경험합니다. 일이 잘 풀리는 날에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실패하거나 비교당하는 날에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마치 사다리를 오르내리듯, 성취와 인정을 얻을 때는 위로 올라가고, 실패와 거절을 마주할 때는 아래로 내려갑니다.
문제는 이 사다리 위에서는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다리의 특성상, 위로 올라간 자리는 언제든 다시 내려올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다리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도, 다음 실패나 비교 앞에서는 순식간에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사람이 정작 작은 비판 앞에서 크게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서 있던 자리는 안정된 땅이 아니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사다리의 한 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르내리는 자존감의 정체는 사실 비교와 성취에 기반한 자기평가입니다.
남들보다 잘하고 있는가,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가에 따라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실시간으로 바뀝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합니다. 오늘 증명에 성공하면 잠시 안심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내일이면 또 다른 증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은 아무리 많은 성취를 쌓아도 결코 충분함에 도달하지 못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없는 것일까요. 있습니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자존감과는 다른,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감각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잘하든 못하든, 나는 여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서 나옵니다. 이 두 번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성취가 있을 때는 기뻐하지만 성취가 없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이 차이는 실패를 마주하는 순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사다리 위의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실패 앞에서 "나는 실패자다"라고 느낍니다. 실패라는 사건이 곧 자기 자신에 대한 판결이 되어버립니다.
반면 땅에 발을 딛고 선 자기 존중을 가진 사람은 실패 앞에서 "이번 일은 잘 안 됐다"고 느낍니다.
사건과 자기 자신 사이에 거리가 있습니다. 실패는 하나의 사건일 뿐, 자신이라는 존재 전체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한 내담자는 오랫동안 일에서 인정받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해왔습니다. 성과가 좋을 때는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승진에서 밀리거나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며칠씩 깊은 무기력에 빠졌습니다. 그는 이것을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의 자존감은 낮은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성과에 결박되어 있었습니다. 성과가 좋을 때는 하늘 높이 치솟고, 나쁠 때는 바닥까지 떨어지는, 진폭이 아주 큰 자존감이었던 것입니다. 상담을 통해 그가 배운 것은 자존감을 더 높이는 방법이 아니라, 성과와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갖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나는 여전히 최선을 다한 사람이고, 여전히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게 되면서, 그의 기분은 여전히 오르내렸지만 그 진폭은 점점 완만해졌습니다.
이 두 번째 종류의 자기 존중은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개 어린 시절, 내가 무엇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한결같이 나를 바라봐 주는 시선을 통해 자라납니다. 성적이 나빠도, 실수해도, 별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못해도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경험을 충분히 쌓은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성과와 무관하게 자신을 존중하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지니게 됩니다. 반대로 사랑과 인정이 늘 조건적이었던 사람은, 이 감각을 스스로 다시 배워야 합니다.
다시 배운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하루 중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문장 대신 "오늘 이 일은 잘 안 됐지만, 나는 여전히 노력한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건네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건네다 보면, 조금씩 사건과 자기 자신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거리가 바로, 사다리에서 내려와 단단한 땅 위에 서게 되는 시작점입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일에 몰두하기보다, 오르내리지 않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 더 근본적인 답일지도 모릅니다. 높이 올라가려 애쓰는 대신, 어떤 자리에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땅을 마련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진짜로 찾고 있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마음의숲 심리상담센터
원 장 박 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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