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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성격이 되는 과정 — '상처'는 때때로 '성격'이 된다
사람들은 흔히 성격을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민한 사람은 원래 예민하게 태어났고, 완벽주의자는 원래 꼼꼼한 기질을 타고났다고 여깁니다. 물론 기질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상담실에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금의 성격이라 불리는 것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한때 그 사람을 지켜주었던 방어였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 환경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면, 아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며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이 불안정하거나, 예측할 수 없거나, 때로는 위협적이었다면, 아이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반복되면서, 점차 그 사람을 이루는 하나의 특징으로 굳어져 갑니다. 예민함은 그중 하나입니다.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고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대의 표정이 조금만 달라져도, 말투가 조금만 변해도 즉시 알아차


가짜 자아(거짓자기) 심리학 —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나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한 가지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돌봄을 얻기 위해서는, 돌봐주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에 새겨지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아주 일찍부터 관찰자가 됩니다. 부모의 표정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그것을 알아채고, 부모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모습을 보일 때 사랑받고 어떤 모습을 보일 때 외면당하는지를 몸으로 익힙니다. 그리고 그 관찰의 결과에 따라 자신을 조금씩 조정하기 시작합니다. 울음을 참고, 화를 삼키고,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부모가 기뻐할 만한 모습을 먼저 보여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순하고, 착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일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이런 아이를 키우기 쉬운 아이라고 여기고, 주변에서는 속


자기성찰의 진정한 의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것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내가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생각해 보고,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찾아보는 일에 가까울 것입니다. 하지만 상담적 관점으로 보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단순히 내 감정의 원인을 알아내는 것과는 조금 다른 작업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쉽게 내리던 판단을 잠시 멈추는 일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불편해지면 곧바로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 ‘왜 나는 이것 하나를 제대로 못 견딜까?’ ‘이 정도 일로 힘들어하는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그런데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에는 질문의 방향이 조금 달라집니다. ‘내가 왜 이러지?’에서 ‘내 마음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로. 이 작은 차이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전자의 질문에는 이미 나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습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반면 후자의 질


감정 억압과 무감각 — 내가 느끼는 감정은 왜 이렇게 낯설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보다 주변의 요구를 먼저 살펴야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울면 “울지 마”라는 말을 들었고, 화를 내면 “그런 걸로 화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힘들다고 하면 “다들 힘들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속상하다고 말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 안 되는 건가?’ ‘화가 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이 정도 일에 울면 안 되는 거겠지?’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감정을 없애는 법을 배웁니다. 슬퍼도 괜찮다고 말하고, 화가 나도 이해한다고 말하고, 서운해도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겉으로 보기에는 꽤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감정을 계속 억누르다 보면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신념 자각하기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은 정말 나의 생각일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은 정말 나의 생각일까?’ 나는 원래부터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하며, 남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정말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일까요. 혹은 부모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것, 학교에서 배웠던 것, 사회가 반복해서 보여주었던 기준들이 어느 순간 내 안으로 들어와 마치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요. 어린아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무엇이 부끄러운 것인지,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부모의 표정과 말, 칭찬과 꾸중을 통해 하나씩


진짜 원하는 것 찾는 법 —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살면서 이 질문을 한 번쯤은 진지하게 던져보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대답하려고 하면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좋은 직업을 갖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성공하고 싶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면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돈이 많아지면 무엇이 좋을까요?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불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원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안정감이나 자유에 대한 욕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어떤 욕구가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나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공에 대한 욕망 뒤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나 가치 있는 존재이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이해와 자기규정의 차이 — ‘나를 이해하는 것’ vs. ‘나를 규정하는 것’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나는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야. 나는 원래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해. 나는 원래 감정 표현을 잘 못해. 나는 원래 관계에서 불안한 사람이야. 이런 말은 때로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힘들어하고,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은 분명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이해와 자기규정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이해는 나를 설명하지만, 자기규정은 나를 가둘 때가 많습니다. “나는 낯선 사람들과 있으면 긴장하는 편이다.”라는 말과 “나는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앞의 말에는 변화의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낯선 사람과 있을 때 긴장하는 내가 있지만, 익숙해지면 편안해질 수도 있고, 경험이 쌓이면 조금 덜 긴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사회성이 없는 사람이다.


내사(introjection) 심리학 개념 — 내사: 내면화된 타인의 확신
에리크 베르네는 최초의 깊은 상처를 기초 상처라고 부릅니다. 초기의 자아 도취, 즉 아이의 자기애를 상처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발랄함과 적응성, 자존감 등을 망가뜨리는 부정적 메시지들은 모두 이 기초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넌 왜 이렇게 칠칠치 못하니"라든가 "그렇게 어린애처럼 굴지 말아라" 같은 말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네 느낌에 귀기울이지 말라"는 의미도 됩니다. 비단 말로 표현된 문장뿐만 아니라 언어가 아닌 신호도 그러합니다. 말없이 전달되는 이 신호들도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엄한 눈길, 그리고 때로는 벌칙조차도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엄격함을 풍기는 음성의 억양이나 모른체 하기, 아이에게 '너는 제대로 되지 않았어'라는 뜻으로 느껴지는 외면하는 몸짓도 그런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체험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받아들여 이른바 '내사 introjection'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사용


신경증적 갈등이란 — 억압된 분노와 심리적 증상
기계연구소에서 타인과 함께 일하는 어느 엔지니어는 자주 피로를 느끼고 짜증이 나는 고통을 겪었다. 특정한 기술적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의 의견은 동료의 의견에 비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그의 부재중에 어떤 결정이 내려졌고, 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그는 이러한 절차가 부당하다고 간주하고 대항할 수도 있었고, 다수의 결정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그가 어떠한 대응을 취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으며, 심히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느꼈을지라도 싸우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화가 난다는 것을 인식할 뿐이었다. 그의 안에 있는 살인적인 분노는 그의 꿈에서만 나타났다. 그의 억압된 분노 - 다른 이들을 향한 격노와 그 자신의 미약함에 대한 분노의 혼합 - 는 그의 피로감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그가 일관되게 반응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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