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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은 '오르내림'이 아니라 '뿌리내림'이다
우리는 흔히 "자존감을 높이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이미 하나의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는, 오르내리는 무언가라는 전제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이렇게 경험합니다. 일이 잘 풀리는 날에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실패하거나 비교당하는 날에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마치 사다리를 오르내리듯, 성취와 인정을 얻을 때는 위로 올라가고, 실패와 거절을 마주할 때는 아래로 내려갑니다. 문제는 이 사다리 위에서는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다리의 특성상, 위로 올라간 자리는 언제든 다시 내려올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다리 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도, 다음 실패나 비교 앞에서는 순식간에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사람이 정작 작은 비판 앞에서 크게 흔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서 있


완벽주의에 대한 이해 —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 뒤에 숨어 있는 것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더 나은 결과를 원하고, 더 꼼꼼히 준비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마음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잘 해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족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움직입니다. 잘했을 때 느끼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안도이고, 조금이라도 부족했을 때 느끼는 것은 아쉬움이 아니라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완벽주의는 흔히 성실함이나 높은 기준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완벽주의는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해야 한다"는 목표라기보다, "부족한 나는 괜찮지 않다"는 믿음에 더 가깝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일의 결과는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시험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좋은


미움받을 용기, 그 반대편 — '미움받지 않을 권리'
몇년 전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저도 그 책을 읽었고,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던 기억이 납니다. 미움받는 것이 두려워 남 눈치보느라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미움 받더라도 자기 소신껏 살라’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 생각해보니, 이 말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이 나를 미워하더라도 나만 개의치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겠냐는 말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 돌리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만사 본인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어떤 일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이번 컬럼에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폭력’입니다. 왕따, 은따, 집단 괴롭힘, 빵셔틀, 온라인 폭력 등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폭력들을 보면,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의 특정한 점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미워하고 괴롭히


'애정결핍'과 '충족'
'저 사람 애정결핍 있나봐..', '나도 혹시 애정결핍 아닌가?' 이런 생각 다들 한번씩 해보셨을 겁니다.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어른이 된 후에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과도하게 애정을 요구하거나, 사소한 무관심과 거절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 '애정결핍이 있다'라고 자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보통 애정결핍이 '있다' 혹은 '없다'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애정욕구가 항상 충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애정결핍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정서상태'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독립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애정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있고, 스스로 이걸 감지하게 되었을 때 이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죠. 친한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고 시간을 같이 보낸다든지, 동호회 같은 곳에 참여해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어


자기 가치감 낮은 이유 — 나와 남에 대한 “가치평가”
‘나는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인가?’, ‘존중받을만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를 늘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만약 여기에 대한 확고한 해답을 갖기만 한다면, 지금보다는 덜 스트레스 받으며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 대부분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모를 때가 더 많은 듯 합니다. 어떤 순간에는 자신이 가치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별것 아닌 일에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경험을 자주 하니까 말이죠. 그리고 자신의 가치는 낮게 여겨지는 반면, 남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게 여겨져서 열등감에 빠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선, 우리의 ‘존재가치’는 무엇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평가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절대적인’ 방식과 ‘상대적인’ 방식 말이죠. 절대적인 평가방식은 이렇습니다.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동일한


'자존감' 높이는 방법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나요?" 입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되면 '삶을 좀더 도전적으로 살 수 있고, 인간관계도 더 원활해지고, 스스로에 대해 더 만족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좀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비교했을 때, 높은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삶의 만족도나 인간관계 만족도 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도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두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자존감'과 '친밀감'을 선택할 것입니다. 나를 귀하게 여기고 남과 잘 지낼 줄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얼마든지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서적들을 보면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문구가 단골손님으


내사(introjection) 심리학 개념 — 내사: 내면화된 타인의 확신
에리크 베르네는 최초의 깊은 상처를 기초 상처라고 부릅니다. 초기의 자아 도취, 즉 아이의 자기애를 상처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발랄함과 적응성, 자존감 등을 망가뜨리는 부정적 메시지들은 모두 이 기초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넌 왜 이렇게 칠칠치 못하니"라든가 "그렇게 어린애처럼 굴지 말아라" 같은 말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네 느낌에 귀기울이지 말라"는 의미도 됩니다. 비단 말로 표현된 문장뿐만 아니라 언어가 아닌 신호도 그러합니다. 말없이 전달되는 이 신호들도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엄한 눈길, 그리고 때로는 벌칙조차도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엄격함을 풍기는 음성의 억양이나 모른체 하기, 아이에게 '너는 제대로 되지 않았어'라는 뜻으로 느껴지는 외면하는 몸짓도 그런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체험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받아들여 이른바 '내사 introjection'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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