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익숙한 관계'를 반복하는가?
최종 수정일: 9월 13일

이상한 일입니다. 지난 관계에서 그토록 힘들었으면서, 다음 사람을 만날 때도 비슷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
니다. 냉정한 사람 때문에 오래 마음을 앓았으면서, 또다시 나에게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사람에게 눈이 갑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 번, 네 번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면, 그제야 묻게 됩니다.
나는 왜 자꾸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받는 관계를 선택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지의 부족이나 안목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 우리가 태어나 처음 관계를 배운 자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친밀함이 어떤 느낌인지, 관계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배웁니다. 이 배움은 언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몸과 마음에 새겨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겨진 감각은 성인이 된 후에도 관계를 판단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으로 남습니다.
문제는 이 기준이 “좋은 관계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익숙한 관계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안전한 것과 익숙한 것을 종종 혼동합니다.
어린 시절 사랑이 늘 조건적이었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서 오히려 불안을 느낍니다. 그 사랑이 낯설고, 믿기지 않고, 심지어 지루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애를 태우고, 확신을 주지 않고,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관계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끌립니다. 그 긴장과 불안정함이, 어린 시절 사랑을 느꼈던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내담자는 연애할 때마다 자신에게 무심하고 연락이 뜸한 사람에게 끌린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아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늘 바빴고, 어쩌다 집에 있는 날에는 그 관심을 얻기 위해 애를 써야 했던 기억이 많았습니다. 그에게 사랑은 원래 노력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었고, 쉽게 주어지는 애정은 오히려 진짜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쁜 관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야 하는 관계를 사랑이라고 배워온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반복하는 관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어린 시절 배운 그 언어로만 사랑을 이해하고, 사랑을 알아보고,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러니 새로운 방식의 사랑, 즉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따뜻한 사랑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을 사랑이라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우리는 익숙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에게만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상처를 이번에는 다른 결말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은, 자신을 잘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려 애씁니다. 무의식 어딘가에서는, 이번에야말로 그 사람의 마음을 얻어냄으로써 오래된 결핍을 채우고 싶다는 바람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시도는 대개 같은 실망으로 끝납니다. 상대는 부모가 아니고, 그 관계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는 무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패턴이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는 달라집니다. 왜 자꾸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지, 왜 좋은 사람 앞에서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지에 대해 자신을 탓하는 대신,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해가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조금 다른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관계를 맺는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끌리는 이 느낌은, 이 사람이 정말 나에게 좋은 사람이어서인가, 아니면 이 느낌이 익숙해서인가.
반대로 지금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이 관계는, 정말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낯설어서인가.
이 두 질문을 구별하는 연습이야말로, 오래된 패턴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됩니다.
익숙함과 사랑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 둘을 구별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마음의숲 심리상담센터
원 장 박 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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