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억압과 무감각 — 내가 느끼는 감정은 왜 이렇게 낯설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보다 주변의 요구를 먼저 살펴야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울면 “울지 마”라는 말을 들었고, 화를 내면 “그런 걸로 화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힘들다고 하면 “다들 힘들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속상하다고 말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 안 되는 건가?’
‘화가 나는 내가 이상한 건가?’
‘이 정도 일에 울면 안 되는 거겠지?’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감정을 없애는 법을 배웁니다.
슬퍼도 괜찮다고 말하고, 화가 나도 이해한다고 말하고, 서운해도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겉으로 보기에는 꽤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감정을 계속 억누르다 보면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이 됩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어색한 것처럼,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은 자신의 감정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막상 상담실에서 “지금 어떤 감정이 드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합니다.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는 눈물이 나는데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화를 내면서도 자신은 화가 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너무 예민했던 것은 아닌지 걱정합니다.
감정을 억압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어려운 것은 감정을 느끼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감정을 믿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가 정말 서운한 걸까?’
‘내가 정말 화가 난 걸까?’
‘이 정도로 힘들어할 만한 일인가?’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끊임없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감정에는 시험 답안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일이 나에게는 아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쉽게 넘기는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오래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내 마음이 그렇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입니다.
상담에서 감정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억눌러왔던 감정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신호부터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조금 불편했구나.”
“사실은 서운했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화가 나 있었구나.”
처음에는 이런 작은 알아차림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 먼저 몸의 반응을 살펴보도록 권합니다.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가슴이 답답한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몸이 굳는지,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눈물이 나는지, 누군가에게 싫다는 말을 해야 할 때 배가 불편해지는지.
몸은 때때로 우리가 인정하지 못한 감정을 먼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나는 괜찮지 않았구나..”
이 말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그동안 “괜찮아요”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해왔던 사람에게, 이것은 단순한 인정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감정을 다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괜찮지 않다고 인정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 난다고 해서 반드시 화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서운하다고 해서 상대방을 비난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과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오히려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야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야 그 화를 어떻게 표현할지 결정할 수 있고, 서운하다는 것을 알아야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슬프다는 것을 인정해야 자신에게 필요한 위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들은 흔히 감정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문제는 감정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감정을 느끼고 다루는 과정이 오랫동안 차단되어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늘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주는 것이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인정해주는 것이며, 사실은 많이 외로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정말 힘들었구나.”
“나는 사실 많이 서운했구나.”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괜찮지 않았구나.”
그 말을 하는 순간 과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 마음을 모른 척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오랫동안 낯설었던 감정과 다시 친해지는 것.
어쩌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용히 바라보고,그것을 틀렸다고 판단하지 않고,마침내 “그래, 네가 그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알아주는 것.
우리가 마음을 회복한다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변화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감정을 다시 믿어주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조금씩 다른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괜찮아요” 대신,
“괜찮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 알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음의숲 심리상담센터
원 장 박 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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